단조로운 4차원, 아티스트 김하영

Posted on February 28, 2011 by 박 성태

 

 

김하영은 현재 런던 Royal Academy에서 석사 과정 중인 20대의 젊은 아티스트다. 그는 아직 어디에 정착하거나 하나의 테마에 천착하지 않고 롤러코스터를 탄 듯 빠르게 떠다니길 원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내 작품을 보면 너의 몸이 반응하게 될 걸"이라고 말하는 당찬 면모를 지니기도 했다. 런던에 간 지 3년 만에 Glenfiddich 아티스트 레지던시(2010), Royal Academy School에서 수여하는 Jerwood Prize 본상, The Arts Club Prize Excellence in Drawing Award(2009)에서 일등상 등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런던 캠든타운에 위치한 빅토리안 하우스 갤러리 43 Inverness Street에서의 전시는 그의 첫 번째 개인전이다.

 

1. 하우스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어떤가?

첫 솔로 전시여서 부담이 많았지만 화이트 큐브가 아니어서 좋았다. 생활공간이고 전시 중간에 피아노 연주도 있어 마음도 편하고, 그래서인지 사람들과도 보다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내 작업으로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공간과의 조화를 찾거나, 사람이 사는 공간에 약간의 양념을 더하는 것이어서 부담도 덜했다.

 

2. 언제 작업한 작품인가?

작년 6월부터 9월까지 글랜피딕이 후원해 스코틀랜드에서 작업할 기회를 얻었다. 그곳은 스코틀랜드에서도 정말 산골이다. 사람보다 소가 더 많다. 2층에 전시 중인 49명의 여자 아이 작품인 <나에게 거짓말하기>는 그곳에서 고립되어 있을 때 하나하나 만든 것이다. 정말 조용하게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

 

 

3.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갔던 스코틀랜드가 마치 이상적인 유배지 같이 들린다. 몸은 갇혀 있으나 상상의 나래는 끝없이 펼칠 수 있는….?

(웃음) 그곳은 어둡고 침울했다. 거기서 나는 미친듯이 많은 색깔을 썼다. 작업실에는 비비드하고 플라스틱 같이 가볍고 곧 부서질 듯이 선명한 색의 물감들로 가득했다. 작품 화면 속에서 많은 여자아이들이 조잘대고 꿈틀거리니까 그곳 사람들이 적잖이 놀라기도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전시회를 가졌는데, 방문하는 마을 사람들이 백파이프를 불며 전시장에 오기도 하는 등 전시회는 마을의 잔치였다. 내 작품을 보고 그들은 나를 정말 다른 사람이라고 느끼는 듯했다. (작년 글랜피딕 레지던시 프로그램에는 김하영 작가 외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뉴욕, 시카고에서 온 8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했다. 각 지역을 대표 작가들이다. 그는 런던을 모르는 런던 대표였다.)

 

4. '나에게 거짓말하기', '실험용 쥐', '먹고 토하기', '조금만 민거야' 등 제목이 심상치 않다.

나는 란 간행물을 정기구독하고 있다. 그 어떤 공상과학 소설보다 더 이상하고 흥미로운 일들이 그 안에 있다. 그 잡지에서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산다"는 기사를 읽었다. 내가 아닌 나를 마음 속에 그리고, 간접적인 관계에 보다 익숙해지면서 캐릭터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과 SNS로 연결된 현대 사회에서 이런 현상은 더 강화된다고 한다. 내 작품의 캐릭터들은 눈이 비어있다. 영혼이 없고, 객체화, 대상화되어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존재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다가 그런 제목의 작품을 그렸다.

 

5. 작품에 무엇을 담고자 하는가? 작가? 사회? 보이지 않는 에너지?

내 작품은 내 일상적 경험과 시선에서 시작된다. 그렇다고 내 에고ego를 몽땅 전사해서 꽉 채우고 싶지는 않다.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느꼈으면 한다. 그리고 내 이미지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가상현실은 현실을 닮아있지만 현실은 어떤 가상현실도 닮아있지 않다. 내가 하고 있는 페인팅도 가상인 거다. 현실을 반영했지만 어떠한 현실도 닮아있지 않은… 작품 중에 <열대성펀치>란 작품이 있다. 어떤 요리사는 이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버섯을 소스에 찍어 먹는 것 같다고 했다.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부분을 남겨두고 싶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원하는 것은 내 2차원 페이팅에서 케미컬한 리액션이 보는 이의 몸에 반응을 일으켰으면 한다. 장기가 꿈틀거리는 느낌 말이다. 시각은 가장 먼 감각이지만 베이컨Francis Bacon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그것을 느낀다. 내가 바라는 경지다.

 

6. 로얄 아카데미에서 2008년 가을 학기부터 공부하고 있다. 서울에서 작업할 때와 무엇이 다른다.

모든 게 다르다. 특히 사람들이 아트를 접하는 방식이 다르다. 여기서 나는 많이 자유로워졌다. 홍대에 다닐 때는 제약이 많았다. 포멀리스트들은 멀리 나가고 자유롭게 이곳저곳으로 날뛰고 싶어하는 나를 한 곳에서 하나만 파라고 몰아세웠다. 더 진지해지라고 했다. 나는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다양하게 접하고 싶었다. 그래서 홍대 대학원을 1학기 다니다 런던으로 도망왔다. 지금 내 작업은 많이 밝아졌다. 회화적인 제스처가 자유로와졌다.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남의 눈치 안 보고 내 것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7. 로얄 아카데미는 수업료도 없고 학생과 후원자를 연결해 주는 등 작가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현재 이곳에 16명의 학생들과 같이 있다. 정말 모두 다양하다. 다 다른 것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각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내가 경계 중간에 있기를 바란다. 완고하기 보다는 예술을 즐기는 자세를 배우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엄청나게 리액션이 많다. 다양한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말을 해준다. 작가로서 좋다. 자기 혼자만의 자위일 수도 있지만, 반응이 많아서 나 혼자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자주한다. 한국에서는 아티스트라고 하면 "뭐 먹고 살게요"라는 질문을 주로 받았는데, 여기서는 "어떤 작업 하냐"고 묻는다.

 

8. 일상은 어떤가?

정말 단조롭다. 아침 9시에 학교 작업실에 나온다. 티를 만들고, 어제 했던 작업을 살펴보고, 다이어리에 혼자 이런저런 것을 끄적인다. 드로잉을 많이 하는 편이다. 다이어리에 항상 무언가를 그린다. 대부분 일상 생활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그걸 끝없이 변주한다. 혼자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가끔 허공에 대고 욕도하고, 춤도 춘다. 기분이 좋으면 끝까지 올라갔다가, 아니다 싶으면 추락해서 구석에 처박혀 있는다. 저녁 9시까지 작업실에 있는데, 가끔 머리가 핑 돌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산책을 한다. 재밌는 게 없다. 런던에 있는데…

 

9. 첫 개인전인데 반응이 뜨겁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프닝에 와주고, 작품을 사줬다. 사람들의 관심이 고맙다. 동시에 그런 관심으로 내가 아닌 내가 될까봐 무섭다. 그림이 팔려서 '앗싸'라기 보단 곤란한 느낌이 아직 강하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에너지도 많이 소비했다. 자기 비판적이어서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욕을 하고 펑펑 울었다. 울어야만 했다. 그러면 시원해지고, 다시 내일부터 작업실로 들어가 칩거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작가로서 일상은 단조로울 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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